세계관 만드는 법: 이야기 속에서 제 몫을 하는 세계 짓기
핵심 요약
인물을 압박하는 것만 지으세요. 어떤 요소든 짓기 전에, 그 요소가 몰아붙일 인물과 그 일이 벌어질 장면부터 정하세요. 지리는 가장 적은 품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내요. 땅이 무엇을 어렵게 만드는지 정하세요. 관습은 그 관습이 원래 풀던 문제에, 법은 그 법에 짓눌리는 사람에, 마법이나 기술의 규칙은 인물이 치르는 대가에 이어 두세요. 다음 다섯 장면이 묻는 질문에 모두 답할 수 있으면 그만 지으세요.
작년 6월, 미줄라 외곽의 한 다이너에서 냅킨에 산맥을 그렸어요. 14장의 한 인물이 언니 결혼식에 엿새 늦어야 했는데, 왜 늦는지를 몰랐거든요.
쉬운 답부터 대 봤어요. 폭풍, 다리를 다친 말, 검문소. 어느 것도 엿새를 벌어 주지 못했어요. 하루, 잘해야 이틀이었고, 제 주인공은 웬만한 걸림돌쯤은 어떻게든 돌아갈 길을 찾아내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냅킨을 꺼내 주인공이 넘어야 할 고갯길을 그리고 이름을 붙인 다음, 소설이 시작되기 3년 전에 일어난 산사태 하나를 넣었어요. 산사태로 길은 수레 한 대가 겨우 지날 만큼 좁아졌고, 통행세 초소는 일손이 모자란 채로 남았어요. 그리고 평소엔 거의 안 하는 일을 했어요. 늦가을의 희미한 빛 속에서 반쯤 무너진 지그재그 산길 1마일을, 말을 타지 않고 끌고 지나가려면 실제로 몇 시간이 걸리는지 하나하나 계산해 본 거예요. 답은 고되고 느렸고, 주인공을 반기지 않는 마을에서 이틀 밤을 묵어야 한다는 걸 더하자 정확히 엿새가 나왔어요. 냅킨 그림에는 40분이 걸렸어요. 그리고 3주째 빙빙 돌던 개요의 구멍이 메워졌어요.
세계관 짓기는 원래 이렇게 돌아가야 해요. 빠르고, 구체적이고, 그것 없이는 풀리지 않는 장면 하나를 위해서요. 그런데 대부분의 세계관 짓기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아요. 제 몇 년 치를 포함해서, 대부분은 냅킨 스케치에서 스프레드시트로, 폴더로, 결국 작가 말고는 아무도 읽지 않을 개인 위키로 점점 번져 가고, 그 대부분은 실제 책의 한 쪽에도 닿지 못해요. 그 소용돌이 이야기는 앞선 글에서 했어요. 통화 세 종류와 열세 달짜리 달력이 있는 세계를 짓느라 일곱 달을 쓰고, 정작 한 줄도 쓰지 못한 소설 이야기요. 이 글은 그 글의 짝이에요. 그 글이 함정에 관한 글이었다면, 이 글은 함정을 피하는 방법이에요. 허구의 세계 가운데 이야기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부분만, 원고에서 멀어지지 않고 원고 쪽으로 계속 나아가게 해 주는 순서대로 짓는 실전 방법이요.
압박의 원칙을 작업 방법으로
앞선 글을 읽으셨다면 알겠지만, 핵심 생각은 세계관이 인물을 압박하려고 있다는 거예요. 그 밖에 세계관이 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지 않아요. 그 주장을 여기서 다시 펼치지는 않을게요. 대신 그 생각이 일이 다 틀어진 뒤에 돌려 보는 진단이 아니라 처음부터 쓰는 작업 방법이 되면 어떤 모습인지 보여 드리고 싶어요. 진단은 4만 단어어치 설정만 있고 초고는 한 줄도 없는 상태를 마주한 뒤에야 하게 되니까요.
방법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래요. 세계의 어떤 요소든, 짓기 전에 그 요소가 짓누를 인물과 그 짓누름이 일어날 장면을 먼저 대세요. "언젠가"가 아니라, "책 어딘가에서"가 아니라, 특정한 인물과 특정한 장면이요. 둘 다 댈 수 없다면, 아무리 궁금해도 아직 그 요소를 지을 때가 아니에요.
답답하게 들리죠. 실제로 답답하고, 답답해야 맞아요. 세계관 짓기를 잘하게 만드는 기질, 그러니까 호기심과 체계적인 사고, 한 장소가 밑바닥까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은 갈증이야말로, 그냥 내버려 두면 책 없는 세계만 지어 주는 바로 그 기질이에요. 이 방법은 덜 궁금해하라는 게 아니에요. 그 호기심을 내 이야기가 실제로 건드릴 부분에 쓰고, 나머지는 일부러, 죄책감 없이 미뤄 두라는 거예요. 다음 책이 필요로 할 때까지, 아니면 제 냅킨과 죽은 신들의 달력과 함께 그냥 서랍 속에 남아 있게요.
빙산 접근법, 그리고 얼마나 깊이 들어갈까
세계관을 지어 본 사람이라면 빙산 비유를 들어 봤을 거예요. 대개 헤밍웨이의 생략 이론에서 조금 느슨하게 빌려 온 말인데, 어떤 주제를 속속들이 아는 작가는 그걸 빼고 써도 독자가 그 존재를 느낀다는 거예요. 빙산의 10분의 9가 물 아래 잠겨 있어도 그 덩치가 느껴지듯이요. 2차 세계에서 이걸 해낸 작가로 가장 자주 꼽히는 사람은 진 울프예요. 『새로운 태양의 서』(The Book of the New Sun)에서 그는 fuligin, chatelaine, peltast처럼 실제로 있지만 낯설고 예스러운 영어 단어를 지어낸 사물에 붙이고, 뜻은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아요. 독자가 맥락과 문장의 확신만으로 의미를 짜 맞추게 두는 거죠. 문장이 설명하지 않는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으니, 그 세계는 바닥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이 비유의 함정은, "10분의 9는 물 아래"라는 말을 듣고 그 10분의 9를 다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럴 필요 없어요. 필요한 건 지면에 드러난 10분의 1이 나머지가 정말 있는 것처럼 굴게 하는 거고, 그건 분량이 아니라 일관성과 암시의 문제예요. 세 챕터 뒤에 정확하게 다시 나오는 지명 하나가 역사를 암시해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 전쟁을 인물이 지나가듯 언급하면 깊이가 생겨요. 둘 다 그 전쟁의 원인과 사상자와 강화 조약을 따로 문서에 적어 두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제가 쓰는 기준은 이거예요. 이 사실은 어딘가 파일에 진짜 답이 있어야 할까, 아니면 답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만 하면 될까? 빙산 대부분은 답 없이 둬도 돼요. 소설은 백과사전이 아니고, 아무도 확인하러 오지 않으니까요.
예외는 플롯이 실제로 딛고 설 것들이에요. 그 전쟁의 결말이 14장에서 고갯길을 누가 다스리는지를 정한다면, 네, 답이 있어야 해요. 인물의 목숨이 걸려 있고, 거기서 어긋나면 결국 플롯의 구멍으로 드러날 테니까요. 이 기술 전체가 이 구분 하나에 담겨 있어요. 지면에 닿는 10퍼센트 바로 밑에는 진짜 답을 지어 두고, 그 아래는 모두 소문으로, 질감으로, 언뜻 보였을 뿐 확인되지 않은 윤곽으로 남겨 두세요.
바로 이 때문에 저는 목록을 둘로 나눠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나눈 것만으로 몇 주를 아꼈어요. 하나는 "답한 것" 목록이에요. 장면이 필요로 해서 실제로 따져 본 사실들이고, 나중에 왜 그렇게 정했는지 다시 찾을 수 있게 옆에 챕터 번호를 적어 둬요. 다른 하나는 "암시한 것" 목록이에요. 전쟁, 죽은 왕, 국경 분쟁처럼 문장으로 슬쩍 가리키기만 하고, 아직 어떤 장면도 답을 요구하지 않아서 일부러 열어 둔 사실들이에요. 두 번째 목록은 할 일 목록이 아니라 허락 목록이에요. 그 질문 가운데 하나에 답하러 가고 싶어 근질거릴 때, 그 목록을 보며 이건 필요가 아니라 호기심이고 원고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떠올리려고 있는 거예요.
물리적 세계: 플롯을 정하는 지리
지리는 들이는 품에 비해 가장 큰 보상을 주는 세계관인데, 마법 체계나 정치 지도에 비해 작가들이 가장 덜 공을 들이는 층이에요. 지루한 부분처럼 보이니까요. 지루하지 않아요. 원인을 만들어요. 산이 어디 있느냐가 누가 누구에게 얼마나 빨리 닿을 수 있는지를 정해요. 강이 어디서 굽느냐가 어느 마을이 교역으로 부자가 되고 어느 마을이 가난해졌는지를 정해요. 수확물이 썩기 전에 얼마나 멀리 실어 날라야 하느냐가 기근이 3주 뒤에 올지 3년 뒤에 올지를 정해요. 지리는 거의 저절로 플롯의 논리를 만들어 내는 유일한 층이에요. 거리와 결핍은 작가가 의도하든 말든 갈등을 일으키는 엔진이니까요.
누가 늦게 도착하는지는 땅이 정해요.
요즘은 해안선보다 거리를 먼저 그리는데, 이 순서 하나로 거의 모든 걸 짓는 순서가 바뀌었어요. 예쁜 해안선부터 그린 지도는 장식을 불러요. 보기 좋으니 여기 섬 하나, 허전해 보이니 저기 산맥 하나. 반면 플롯이 실제로 들르는 몇 안 되는 장소들 사이의 이동 시간 표부터 만든 지도는 플롯을 불러요. 수도에서 국경 수비대까지 걸어서 며칠인지, 겨울엔 며칠인지, 일행을 늦추는 수레까지 딸리면 며칠인지. 이 숫자들이 생기면 해안선은 그 둘레에 오후 한나절이면 그릴 수 있어요. 이제 해안선은 이야기가 이미 기대고 있는 사실들과 어긋나지만 않으면 되니까요. 지도부터 지어 놓고 나중에 플롯과 맞추는 순서가 더 흔한데, 퇴고할 때 모순을 가장 많이 만들어 내는 것도 그 순서예요.
프랭크 허버트는 생태학 교과서를 쓰려던 게 아니었어요. 1950년대 초, 그는 잡지 취재차 오리건주 플로런스에 갔어요. 움직이는 모래 언덕이 해안 고속도로를 삼키지 못하게 유럽산 해안 풀을 심던 정부 사업을 취재하는 일이었어요. 원래 쓰기로 한 기사는 처음 제안한 모습으로는 끝내 실리지 않았지만, 그 취재는 10년 동안 그의 머릿속에 남아 『듄』(Dune)의 씨앗이 됐어요. 땀과 숨에 섞인 수분까지 되돌려 쓰게 하는 증류복부터, 모래벌레를 타는 프레멘의 문화, 귀한 자원 하나가 은하의 정치를 쥐고 흔드는 경제까지, 그 행성의 문명 전체가 물리적 사실 하나에서 흘러나와요. 물이 모자라다는 사실이요. 체계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끝까지 파고드는 기자의 끈기로 그 결핍 하나를 밀고 나가니, 제가 아는 어떤 창작 마법 체계보다 더 많은 플롯과 문화와 인물의 심리가 나왔어요. 허버트는 사막 마법의 일곱 학파 같은 걸 짓지 않았어요. 가차 없는 물리적 제약 하나를 세우고, 그 결과를 왕좌의 방까지 따라갔을 뿐이에요.
이 지렛대를 쓰는 데 행성 하나 분량의 생태학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내 이야기에서 땅이 무엇을 어렵게 만드는지만 알면 돼요. 여기서 좀 엉뚱하지만 논픽션 작가 존 맥피가 떠올라요. 소설가는 전혀 아니지만, 『분지와 산맥』(Basin and Range)이나 『옛 세계의 연대기』(Annals of the Former World) 같은 책에서 지질이 사람의 계획에 실제로 무슨 짓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기록해 온 사람이에요. 맥피는 단층선이나 범람원이 그 위에 마을을 세운 사람들의 운명을 어떻게 조용히 바꿔 버리는지에 수백 쪽을 쓰는데, 그 교훈이 소설에도 그대로 통해요. 땅이 무엇을 허락하지 않는지 정하면 플롯이 저절로 생겨나기 시작해요. 하나뿐인 길이 봄마다 물에 잠겨 보급이 끊기는 공성전. 3년 전 무너졌는데 아무도 손보지 않은 고갯길 때문에 엿새 미뤄진 결혼식. 이야기에 필요한 마찰을 만드는 지리는 그리고, 그렇지 않은 지리는 건너뛰세요.
문화: 압박 속에서 사람들이 믿는 것
문화에 오면 초보 세계관 작가 대부분이 곧장 지어내기부터 해요. 가상의 종교, 가상의 명절 달력, 가상의 높임말 체계. 그러면서 이 모든 걸 하나로 묶어 줄 질문은 먼저 던지지 않아요. 어떤 물질적 조건이 이 믿음을 낳았을까? 잘 지은 세계에서 관습은 좀처럼 아무렇게나 생기지 않아요. 대개는 그 문화가 몇 세대 전에 풀었거나 풀지 못한 문제가 남긴 화석이고, 왜 그러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 뒤에도 오래도록 이어지는 거예요.
어슐러 K. 르 귄은 이 장르에서 거의 누구보다 엄밀하게 이 문제를 다뤘는데, 우연이 아니에요. 르 귄은 인류학자 아버지 앨프리드 크로버, 그리고 야히족의 마지막 생존자 이시에 대해 쓴 어머니 시어도라 크로버 밑에서 자랐어요. 문화를 무대 장치로 지어내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체계로 연구하는 집이었죠. 그게 작품에 드러나요. 『언제나 집으로』(Always Coming Home)는 소설이라기보다 상상의 민족지에 가까워요. 케시라는 사람들의 노래와 요리법과 현지 조사 기록을, 인류학자가 실제 문화의 자료를 보여 주듯 펼쳐 놓아요. 『어둠의 왼손』(The Left Hand of Darkness)에서 게센인의 유동적인 양성 생물학은 겉치레 설정이 아니에요. 그들의 사회 구조 전체, 금기, 정치, 수치심이라는 개념까지 모두 그 생물학적 사실 하나에서 나오고, 관습이 실제로 무엇을 위해 있는지 묻도록 자란 사람의 진지함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요.
내 초고에 적용한다면 체계라기보다 습관이에요. 관습을 하나 지어낼 때마다, 그 관습이 원래 풀던 물질적 문제를 한 문장으로 적으세요. 그리고 인물 가운데 누가 그 관습의 죽어 버린 원래 목적과 지금도 살아서 강요되는 현실 사이에 끼어 있는지 물으세요. 한때는 기근을 막았지만 지금은 부패한 의회의 배만 불리는 수확 공물은 설정이 아니에요. 습관처럼 여전히 공물을 바치는 농부와, 왜 그래야 하냐고 묻기 시작한 그 딸을 짓누르는 압박이에요. 관습이 왜 생겼는지와 사람들이 왜 아직도 따르는지 사이의 그 틈이, 인사말과 명절을 위해 지어낸 어떤 어휘보다 극적으로 훨씬 값져요.
저는 장례 풍습처럼 작은 것에도 이 방법을 써요. 고갯길이 나오는 바로 그 원고에, 집에서 누가 죽으면 대문을 하얗게 칠하는 마을이 있었어요. 어느 화요일 오후에 순전히 분위기를 내려고 지어낸 설정이었어요. 몇 달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장식으로만 놓여 있었죠. 그러다 물질적인 질문을 던져 보고서야, 이 풍습은 하얀 물감이 비싸고 그 고장에서 귀할 때만 말이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가난한 집이 대문을 하얗게 칠한다는 건, 제대로 애도하려고 없는 돈을 썼다고 온 동네에 알리는 일이었어요. 그 물질적 사실 하나가 장식이던 설정을 장면으로 바꿔 놓았어요. 주인공의 어머니는 대문을 칠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대사 한 줄 없이도 온 동네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정치: 누가 지렛대를 쥐었고, 왜 쥐었을까
정치 세계관은 아주 뻔한 방식으로 실패해요. 도표예요. 세력 넷, 이름 붙은 음모자 열둘, 아홉 세대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왕위 계승 서열, 그리고 그중 무엇도 독자가 만나 본 사람과 이어져 있지 않아요. 저도 그런 도표를 만들어 봤어요. 죽은 신들의 달력이 있던 그 소설을 위해서요. 음모자 열둘 가운데 아홉은 끝내 한 쪽에도 나오지 않았어요. 그 도표는 정치가 아니었어요. 왕관을 씌운 조직도였어요.
다시 르 귄이에요. 이 문제를 깔끔하게 풀었으니까요. 『빼앗긴 자들』(The Dispossessed)에는 "모호한 유토피아"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 소설의 정치, 그러니까 소유와 자본의 행성 우라스와 맞서는 위성 아나레스의 아나키즘 사회는 한 번도 배경으로 물러나 있지 않아요. 물리학자 셰벡이라는 한 사람 안에 들어앉아 있어요. 한 세계의 시민이자 다른 세계의 방문자로서, 두 세계의 모순에 구체적으로, 개인적으로 짓눌리는 사람이요. 정치가 읽히는 건 그 정치가 밀어붙일 몸을 얻었기 때문이에요. N. K. 제미신의 『부서진 대지』(The Broken Earth) 3부작은 같은 일을 더 폭력적으로 해내요. 오로진을 다스리는 신분 제도가 있어요. 지진을 다루는 힘으로 문명을 구할 수도 있지만 법적으로는 재산이고, "수호자"에게 훈련받으며, 일부는 지진이 도시를 무너뜨리지 못하게 말 그대로 땅에 연결된 채 노드 관리자로 쓰이는 사람들이요. 이 제도는 설명 문단으로 나오지 않아요. 이미지 하나로 도착해요. 관을 잔뜩 꽂은 채 도시 밑 상자 속에 남겨진 아이. 그 이미지 하나가 어떤 도표보다 효율적으로 정치 구조 전체를 고발해요. 전업 작가가 되기 전 여러 해 동안 상담 심리 전문가로 일한 제미신은, 임상가가 알아보는 방식으로 제도의 잔인함을 그려요. 구체적이고, 몸에 새겨 있고, 결코 추상적이지 않게요.
그러니 정치 세계관의 규칙도 이 글의 다른 모든 곳과 같아요. 도표를 그리기 전에 몸부터 찾으세요. 이 법, 이 계승 규칙, 이 교역 봉쇄에 짓눌리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요? 법은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할 만큼만 지으세요. 도표의 나머지, 남은 음모자 열한 명과 여섯 세대의 자잘한 왕들은 꼭 있어야 한다면 인물들이 지나가며 꺼내는 소문으로 남겨 두면 돼요.
마법이나 기술: 체계는 하나, 대신 끝까지
마법과 기술은 옷만 다르게 입은 같은 문제이고, 둘 다 정치와 같은 규칙을 따라요. 모든 능력에는 대가가 있어야 하고, 그 대가는 특정한 인물이 특정한 장면에서 치러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체계가 아니라 소원 목록이에요. 브랜던 샌더슨이나 제미신 같은 작가가 하드 마법과 소프트 마법 사이 어디쯤 서 있는지까지 포함해, 1장을 쓰기 전에 마법 체계에 필요한 세 문장에 대해서는 글을 따로 썼으니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을게요. 여기 보태고 싶은 건 기술 쪽이에요. 작가들은 기술을 제한하는, 그에 못지않게 강력한 수를 두기보다 마법 체계 쪽으로 훨씬 자주 손을 뻗거든요.
허버트의 『듄』은 여기서도 배울 게 많아요. 듄 세계 전체에서 가장 큰 결과를 낳은 설정은 스파이스도 모래벌레도 아니에요. 소설이 시작되기 수천 년 전에 일어나 모든 "생각하는 기계"를 금지한 성전, 버틀러리안 지하드예요. 컴퓨터를 없앤 덕분에 멘타트가 생겨나요. 어릴 때부터 기계처럼 계산하도록 훈련받고, 그 대가로 어딘가 납작해진 기이한 인간성을 갖게 된 사람들이요. 기계 없이 공간을 접으려고 스파이스를 먹으며 몸이 변해 가는 길드 항법사도 그렇고요. 제약 하나가 SF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 유형 둘을 낳았고, 새 장치 하나를 더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그렇게 했어요. 없다는 것 자체가 설정이에요. 그 세계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큰 무게를 지는 경우가 많아요.
수재나 클라크도 『조나단 스트레인지와 마법사 노렐』(Jonathan Strange & Mr Norrell)에 같은 종류의 부재를 심어 뒀어요. 영국의 마법은 우연히 사라진 게 아니라 조용히 명맥이 끊겼고, 그 자리엔 누구도 실제로 부릴 줄 모르는 기예를 연구하고 각주나 다는 "이론 마법사"라는 직업군만 남았어요. 그래서 진짜 마법을 쓸 줄 아는 두 사람이 나타나자, 한 세기 동안 마법이 없다는 전제로 짜여 온 제도와 정치와 우정이 송두리째 뒤집혀요. 이 희소함은 그 세계에 딸린 부수적인 사실이 아니라 전제 그 자체예요. 인물들의 야심과 경쟁심과 두려움 하나하나가, 진짜 힘이 갑자기 얼마나 드물고 얼마나 위협적인 것이 됐는지에 맞춰져 있어요.
어느 쪽으로 짓든 시험은 정치 때와 같아요. 마법 체계나 기술의 규칙 하나하나에 대해 물으세요. 이 대가는 구체적으로 누가, 언제 치르나요? 대가가 "마법은 위험하다" 정도로 추상적인 불의 마법사는 설정 도표예요. 대가를 치른 지 15년이 지나서도 사랑하는 사람이 손을 잡으면 움찔하는 불의 마법사, 치른 대가가 온기를 느끼는 능력이었기 때문에 움찔하는 마법사는 인물이에요. 두 번째 쪽을 향해 지으세요. 그리고 눈앞의 인물에게 구체적이고 몸에 새겨지는 대가를 줄 만큼 규칙이 모이면 바로 멈추세요.
언어: 가장 작은 설정, 가장 큰 효과
톨킨은 문법과 음운 체계와 수백 년의 내부 역사를 갖춘 완전한 언어를 두 개나 지었어요. 언어가 진짜 목적이었고, 소설은 그 언어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 주려고 지은 거였으니까요. 그건 거의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조건이고, 대부분의 세계관 조언이 돌려 말하는 걸 저는 그냥 분명히 말할게요. 여러분에게는 거의 확실히 이 일이 필요 없어요. 오히려 이걸 시도하는 건 여섯 달을 들여 원고 0쪽을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예요.
대신 필요한 건 짧고 일부러 덜 채운 어휘집이에요. 지어낸 단어 스무 개에서 마흔 개, 그리고 단어마다 실제로 쓰이는 장면 하나요. 신분을 드러내는 호칭, 특정 직업에서만 쓰는 욕설, 지면에서 한 번도 설명하지 않더라도 어원만은 내가 아는 지명 같은 것들이요. 그걸 알고 있어야 2권에서 실수로 앞뒤가 어긋나지 않으니까요. 테드 창은 중편 한 편으로, 대부분의 에픽 판타지가 천 쪽의 문법으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언어로 해내요.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에서 헵타포드의 문자는 비선형이에요. 문장 하나가 단어의 줄이 아니라 한꺼번에 존재하는 하나의 모양이고, 그 문자를 읽는 법을 배우면서 언어학자인 주인공이 시간을 겪는 방식 자체가 바뀌어요. SF에서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작가가 되기 전 오랫동안 소프트웨어 설명서를 쓰는 테크니컬 라이터로 일한 창은, 용어집이 아니라 언어학적 착상 하나로 이야기의 감정 구조 전체를 지어요. 용어집은 필요 없어요. 그 언어가 무엇을 위해 있느냐는 착상이 필요해요.
이 일의 실제 전문가 수준이 어디쯤인지 알아 두면 좋아요. 그래야 나를 솔직하게 견줘 볼 수 있으니까요. 데이비드 J. 피터슨은 『얼음과 불의 노래』를 드라마로 옮기면서 도트라키어와 발리리아어를 만들려고 고용된 언어학자예요. 그는 동사 활용과 격 체계와 수천 개의 어근을 갖춘, 실제로 쓸 수 있는 문법을 HBO의 예산으로, 몇 달 동안 보수를 받는 전문가로서 매달려 만들었고, 그걸 제대로 하는 법을 다룬 『The Art of Language Invention』이라는 책까지 따로 썼어요. 온전한 인공어를 만드는 데 실제로 드는 시간과 전문성이 그만큼이에요. 아무도 그것과 겨루라고 하지 않아요. 독자가 어렴풋이 기억하고 끝내 찾아보지 않을 단어 마흔 개를 지어내면 돼요. 찾아볼 필요가 한 번도 없었을 테니까요.
미루기라는 함정, 대놓고 말하기
이 심리는 앞선 글에서 길게 다뤘어요. 세계관 짓기는 왜 글쓰기의 위험은 거의 지지 않으면서 글쓰기처럼 느껴지는지, 세계관 작업을 잘 마친 뒤의 뿌듯함이 왜 안심보다 걱정거리여야 하는지요. 그 이야기를 다시 하지는 않을게요. 다만 그 신호를 가장 빨리 알아채는 방법 하나는 드리고 싶어요. 소용돌이가 3주 깊이로 커지기 전에, 작업하다 말고 30초 만에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니까요.
스스로 물어보세요. 지금 원고를 열면, 방금 지은 걸 다음 500단어 안에 써먹을 수 있나? 솔직한 답이 "아니요"라면, 그러니까 방금 지은 게 흥미롭긴 한데 내일 쓸 장면과는 상관이 없다면, 아마 뭔가를 피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 뭔가는 거의 언제나 세계관이 아니에요. 장면이에요.
피하고 있는 건 언제나 장면이에요.
세계관 짓기는 안전해요. 언제든 더 꼼꼼해질 수 있으니까요. 장면은 실제로 써야 하고, 처음엔 엉망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오늘 써야 해요. 앉아서 그걸 해내는 일을 대신해 줄 "더 꼼꼼하게"는 없어요.
언제 짓기를 멈추고 쓰기 시작할까
대부분의 작가가 찾는 그 멈춤의 순간은 없어요. 허구의 세계가 완성되는 순간 같은 건 없고, 그 순간을 기다리다 소설은 자료 폴더 속에서 죽어요. 실제로 있는 멈춤의 지점은 더 작고 훨씬 쓸모 있어요. 개요에 적힌 다음 다섯 장면 하나하나가 실제로 던질 세계관 질문에 모두 답할 수 있다면, 충분히 지은 거예요.
다음 자료 조사 시간 말고, 다음 집필 시간 전에 이 점검표를 돌려 보세요.
- 개요에서 다음 다섯 장면을 순서대로 적으세요.
- 장면마다 그 장면이 기대고 있는 세계관 사실 하나만 적으세요. 고갯길, 관습, 법, 마법의 대가 같은 것 하나, 딱 그것만요.
- 여섯 번째 사실이 아무리 유혹해도, 그 다섯 가지만 짓고 나머지는 짓지 마세요.
- 다섯 장면을 쓰세요.
- 거기까지 가면, 다음 다섯 장면으로 되풀이하세요.
세계를 미완성으로 남겨 두는 기분이 들 거예요. 맞아요. 세계는 언제나 미완성이에요. 실제 나라의 역사와 지리와 법도 어느 순간에나 미완성이듯이요. 독자는 내 배경을 완성된 물건으로 겪지 않아요. 인물이 그 안을 지나가는 속도 그대로, 한 장면씩 겪어요. 그러니 다섯 장면 규칙은 타협이 아니에요. 짓는 속도를 독자가 실제로 그걸 받아들이는 속도에 맞추는 것뿐이에요.
이 점검표를 처음 제대로 써 본 건 고갯길이 나오는 그 소설에서, 냅킨을 그리고 네 챕터쯤 지났을 때였어요. 답하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는 세계관 질문이 아홉 개 있었어요. 고갯길의 지질학적 내력, 통행세 초소가 세워진 사연, 산맥 반대편에 분명 있을 것 같지만 아직 필요하진 않았던 두 번째 고갯길까지요. 아홉 개 모두에 다섯 장면 시험을 해 봤어요. 살아남은 건 둘이었어요. 다음 장면에서 넘어갈 고갯길 자체, 그리고 곧 한 인물이 소리 내어 부를 통행세 관리인의 이름이요. 나머지 일곱은 "나중에, 중요해지면"이라는 한 줄짜리 목록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400쪽을 쓰는 동안 하나도 중요해지지 않았어요.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실제로 쓰던 책에 꼭 맞는 분량의 세계였다고 생각해요.
쓰기 전에만이 아니라, 쓰면서 짓기
일곱 달의 실패 이후 제 작업 방식에서 가장 크게 바뀐 건, 세계관 짓기를 초고 전에 거치는 단계로 보지 않고 초고와 나란히 가는 습관으로 보게 됐다는 거예요. 이제는 1장을 쓰기 전에 일주일 동안 "세계를 짓겠다"며 앉지 않아요. 1장을 쓰려고 앉고, 1장이 아직 세계가 답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면, 이를테면 이 마을은 추수철에 어떤 냄새가 나는지, 그 고갯길의 통행세는 실제로 누가 걷는지 같은 질문이 나오면, 그 자리에서 답하고, 나중에 앞뒤가 어긋나지 않게 한곳에 적어 두고, 곧장 쓰던 문장으로 돌아가요. 짓는 일은 글쓰기가 열어 준 틈에서 일어나요. 따로 떨어진, 더 이르고 더 안전한 방에서가 아니라요.
여기엔 장치가 하나 필요해요. 그때그때 내린 답을 생기는 대로 적어 두는, 검색할 수 있는 파일 하나요. 그래야 14장에서 지어낸 통행세 관리인의 이름을 31장에서 다시 찾을 수 있어요. 슬그머니 이름을 바꿔 놓고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는 대신에요. 지도, 가계도, 정치적 결정과 그 결과를 잇는 플로차트처럼 프로젝트의 다른 자료들이 모두 참조할 수 있는, 계속 자라는 설정 파일 하나가 미리 써 둔 설정집보다 훨씬 값져요. 실제 원고가 자라는 속도 그대로, 결코 그보다 빠르지 않게 자라니까요. 시작하기 전에 이 체계를 갖추는 단계별 방법이 더 궁금하다면 세계관 짓기 가이드에서 더 깊이 다루고, 세계관 설정집 템플릿은 백과사전식이 아니라 바로 이렇게 필요할 때마다 짓는 방식에 맞춘 틀을 줘요.
앞선 글에서 한 주장, 세계관 짓기에는 해야 할 일이 단 하나 있고 그걸 잊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 있어요. 두 글은 함께 읽으라고 썼어요. 그 글은 왜 멈춰야 하는지를 말하고, 이 글은 애초에 멈출 필요가 없게 처음부터 짓는 법을 말해요.
미줄라 외곽 다이너의 그 냅킨은 아직 책상 서랍에 있어요. 고갯길을 제대로 다시 그린 적도, 지질학적 내력을 다 지어 준 적도, 그 밑에 어떤 광맥이 흐르는지, 소설이 시작되기 400년 전에 누가 그곳을 두고 싸웠는지 따져 본 적도 없어요.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필요한 건 엿새와 산사태 하나, 그리고 주인공을 반기지 않는 마을이었고, 냅킨은 딱 그만큼만 줬어요. 책은 끝까지 쓰였어요. 그 고갯길은 한 장면에 잠깐 나와 제 일을 하고, 저는 그 고갯길에 대해 다른 무엇도 알아야 했던 적이 없어요.
Plotiar는 챕터 곁에 계속 자라는 로어 지식 베이스를 둬요. 그때그때 내린 답, 지도, 가계도, 원인과 결과를 잇는 플로차트까지 한곳에 담아서, 세계가 원고에 실제로 필요한 속도만큼만 자라게 해요. 다음 장면이 요구하는 것만 짓기로 했다면 무료로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