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도는 판타지만의 도구가 아니에요: 어느 장르에서든 이야기의 문제를 푸는 법
2021년 여름, 3대에 걸친 가족 소설의 네 번째 초고를 쓰던 중이었어요. 주인공이 할머니를 "로사 이모"라고 불렀어요. 오타가 아니었어요. 2고와 4고 사이 어딘가에서 저도 모르게 한 여자를 두 사람으로 나눠 놓고, 이름은 둘 다 남겨 둔 채 서로 뒤엉키게 내버려 뒀던 거예요. 19장이었어요. 한 문단에서는 로사가 세상을 떠난 지 11년인데, 세 쪽 뒤에서는 결혼식장에서 버젓이 현재 시제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어요.
합평 모임이 짚어 주기 전까지 전혀 몰랐어요. 이 사이에 고춧가루 꼈다고 조심스럽게 알려 주듯 말해 주더라고요. 저는 줄 노트를 들고 초고 네 벌, 9만 4천 단어를 처음부터 다시 훑으며 네모 칸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할머니. 딸 둘. 두 누이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 아들 하나. 어느 챕터에서는 1987년에, 다른 챕터에서는 1991년에 세상을 떠난 남편. 다 그리고 나니 두 쪽이 꽉 찼고, 그 그림 하나로 베타 리더가 짚었던 연속성 문제 전부와 아직 아무도 못 찾은 문제의 절반이 단번에 설명됐어요.
그 그림이 바로 가계도였어요.
그전까지 가계도를 그려 본 적이 없었어요. 제 책에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에픽 판타지도 아니었고, 물려받을 왕관도, 일곱 세대를 꿰뚫는 예언도, 왕국이 그려진 지도도 없었어요. 미국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40년쯤에 걸쳐 세 자매와 어머니를 그린 소설이었어요. 가계도는 톨킨이나 조지 R. R. 마틴 같은 작가들이나 쓰는 거라고 지레짐작했죠. 틀렸어요. 그 줄 노트 위의 그림 덕분에, 이제는 두 세대 넘게 다루는 책이면 독자가 보든 안 보든 늘 가계도부터 만들어요.
이 글에서 하려는 말을 먼저 분명히 하고, 세 가지 방향에서 증명해 볼게요. 가계도는 한 번 그리고 서랍에 넣어 두는 참고 자료가 아니에요. 이야기의 압력이 어디에 몰려 있는지 한눈에 보여 주는 구조 도구예요.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는지, 누가 원치 않게 누구를 닮았는지, 누가 물려받은 줄도 모르는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는지요. 가계도가 필요하냐는 장르와 거의 상관이 없어요. 몇 세대를 다루느냐가 정해요.
가계도는 판타지만의 도구가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건 이해가 가요. 왕조 계보가 실린 부록은 에픽 판타지의 상징 같은 거니까요. 톨킨의 부록 끝에 실린 왕들의 목록부터, 팬들이 온라인에서 집요하게 다시 그리는 타르가리엔 가문과 스타크 가문의 가계도까지요. 한 장르가 어떤 도구와 자신을 그만큼 강하게 엮어 놓으면, 그 도구가 그 장르 전용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톨킨에게 계보가 필요했던 건 독자가 수백 년에 걸친 왕관의 행방을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에요. 가족 이야기를 쓰는 작가에게 가계도가 필요한 이유는 전혀 달라요. 닮음을 추적하기 위해서예요.
현대 소설과 순문학에는 왕위 계승과는 아무 상관 없이, 오로지 되풀이되는 무늬를 위한 여러 세대 구조가 넘쳐 나요. 어머니의 침묵이 딸의 침묵이 되고, 그 침묵이 다시 도와 달라는 말을 못 하는 손녀가 돼요. 아버지의 불같은 성미가 한 세대를 건너뛰어 뜻밖에도 가장 아끼던 손자에게 내려앉아요. 여기에 왕좌는 필요 없어요.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 누가 누구를 키웠는지,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을 때 누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정확히 아는 작가가 필요할 뿐이에요. 가계도가 없으면 이런 정보를 2년이고 3년이고 걸릴 초고 내내 머릿속에 어렴풋이 쥐고 있어야 해요. 그 시간을 온전히 버티는 기억력을 가진 작가는 본 적이 없어요. 제 기억력은 확실히 아니었고요. 다른 글에서 세계관 설정은 인물을 압박할 때만 제자리를 얻는다고 썼는데, 가계도는 그 원칙이 가장 순수하게 드러나는 도구예요. 가지 하나하나가 누군가를 누르는 압력이에요. 왕국의 계보든 부엌 식탁의 가계도든 마찬가지예요.
미스터리와 스릴러 작가들은 가계도라고 부르지 않을 뿐 이걸 본능적으로 알아요. 누가 집을 물려받는지, 누가 숨겨진 배다른 형제인지, 누구의 죽음으로 누가 이득을 보는지에 달린 이야기는 플롯의 옷을 입은 족보 문제예요. 몬터규와 캐풀렛 같은 앙숙 집안 구도를 현대로 옮겨 오는 로맨스 작가라면, 두 집안이 정확히 어떻게 얽혀 있고 오래된 상처가 어디에 남아 있는지 알아야 해요. 도구는 같아요. 장르 이름표만 바뀔 뿐이에요.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왜 모두에게 아우렐리아노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은 가계도가 소설의 비계가 아니라 엔진이 될 수 있다는 걸 제가 아는 한 가장 분명하게 보여 줘요. 마콘도에 부엔디아 가문 6대가 사는데, 작가는 이들에게 거의 가혹하다 싶을 만큼 비슷한 이름을 붙여요. 줄줄이 이어지는 아우렐리아노들, 줄줄이 이어지는 호세 아르카디오들, 두 세대를 사이에 둔 아마란타와 아마란타 우르술라. 독자들은 이걸 두고 늘 불평하고, 그럴 만해요. 어떤 판본은 아예 책 앞머리에 가계도를 싣는데, 그게 없으면 독자들이 이 가족을 도무지 머릿속에 담아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반복은 솜씨가 모자라서가 아니에요. 책이 하려는 말을 구조로 만든 거예요. 부엔디아 사람들은 순환 속에 갇혀 있는데, 그 안에서 살고 있으니 순환을 보지 못해요.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 갇힘을 이름 짓기로 보여 줘요. 대를 이어 아우렐리아노는 아우렐리아노답게, 호세 아르카디오는 호세 아르카디오답게 행동해요. 집안의 큰어른 우르술라가 긴 생의 끝자락에서 그 무늬를 소리 내어 말할 때까지요. 이 집안의 역사는 되풀이될 뿐이라고요. 이 소설의 가계도는 독자를 위한 참고 자료가 아니에요. 그림으로 그린 주제 그 자체이고, 문장은 그 증명이에요.
우리 대부분은 백 년에 걸친 이야기를 쓰고 있지 않아요. 그래도 이 원칙은 규모를 줄여도 그대로 통해요. 어떤 기질이나 상처, 실수가 우연이 아니라 물려받은 것으로 느껴지게 하고 싶다면, 장면을 하나라도 쓰기 전에 가계도에서 일부러 정해 두세요. 제가 원고 여기저기서 로사의 사망 연도가 떠도는 걸 퇴고하다 우연히 발견했던 것처럼 되지 않게요.
『에덴의 동쪽』의 가계도가 곧 주제예요
존 스타인벡은 훨씬 수수한 방식으로 비슷한 일을 했어요.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은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두 번 다시 들려줘요. 한 번은 애덤 트래스크의 세대로, 한 번은 그의 아들 칼과 아론으로요. 책의 구조 전체가, 독자가 누가 누구를 되풀이하는지 따라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어요. 찰스는 동생 애덤을 시기하고, 한 세대 뒤에는 칼이 아론을 똑같이 시기해요. 애덤은 칼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데, 애덤의 아버지가 애덤에게 그랬던 것과 똑같아요. 스타인벡은 이 책에 대해 쓴 편지들에서, 히브리어 단어 하나, 팀셸(timshel), 곧 "너는 할 수 있다"를 중심으로 900쪽짜리 구조 전체를 지었다고 했어요. 사람은 집안의 죄를 되풀이하도록 정해져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 말이에요.
이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치려면 독자가 이 가족을 아주 또렷하게 따라가야 해요. 누가 누구를 되풀이하는지 놓치는 순간 평행 구조는 그냥 우연으로 무너지고, 책 전체가 하려는 도덕적 이야기도 함께 무너져요. 스타인벡은 독자가 반복을 반복으로 느끼기를 바랐고, 그러려면 어떤 세부가 다시 나오고 어떤 세부는 다시 나오지 않을지 아주 정밀하게 통제해야 했어요. 연속성만이 아니라 주제를 위해 일하는 가계도예요. 사실관계를 바로잡아 주는 그림과, 책의 의미가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는 그림의 차이죠.
스타인벡의 작업을 보다가 빌려 온 질문 하나를 이제 제 가계도에도 대놓고 던져요. 두 사람의 칸을 나란히 놓았을 때, 한 세대가 하는 일이 다른 세대가 했던 일과 운을 맞추고 있나? 솔직한 답이 "아니"라면 괜찮아요. 모든 가족에게 운율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운율을 원한다면, 이제는 문장에 앞서 가계도에 먼저 새겨 둬요. 6고에서 알아챈 운율은 고쳐 쓰기 거리지만, 가계도에서 미리 계획한 운율은 선택이니까요.
일부러 비워 둔 가계도
한야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A Little Life)는 정반대 이유로 이 목록에 들어가요. 소설의 중심인물 주드 세인트 프랜시스에게는 혈육이 있지만, 책은 그들을 거의 끝까지 숨기다가 뒤늦게 조각조각 보여 줘요. 현대 소설에서 가장 가슴을 무너뜨리는 구조적 선택 가운데 하나예요. 대신 야나기하라가 끈질기고 애정 어린 세부로 쌓아 올리는 건 스스로 고른 가족이에요. 윌럼, JB, 맬컴, 그리고 나중에는 주드의 혈육이 한 번도 주지 못한, 아버지에 가까운 존재가 되는 해럴드까지요. 이 관계망은 핏줄로 그려져 있지 않아요. 그런데도 핏줄처럼 움직여요. 저마다의 의리와 원망, 그리고 대물림까지 갖추고요. 주드에게 대물림되는 건 상처고, 다른 이들에게는 돌봄이에요.
이 도구가 이름보다 크다는 확신을 준 게 바로 이 사례예요. 계획 도구로서의 가계도에 혈연은 필수가 아니에요. 필요한 건 누가 누구와, 얼마나 단단히, 무엇을 치르며 묶여 있는지 보여 주는 분명한 지도예요. 대학 룸메이트 넷, 스스로 고른 형제자매, 중요한 모든 면에서 부모가 되어 주는 멘토 같은 선택한 가족 구조도 실제 핏줄만큼이나 추적할 수 있고, 제 원고를 덮쳤던 연속성 어긋남에 똑같이 취약해요. 야나기하라는 그렇게 긴 책에서 기억만으로는 결코 버틸 수 없었을 정밀함으로 주드의 연대기와 친구들의 수십 년이 겹치는 시간을 관리했어요.
소설에 혈연 가족 대신, 또는 혈연 가족과 함께 선택한 가족이 나온다면 그래도 가계도를 그리세요. DNA를 나눈 사람들한테만 통하는 도구라고 단정하지 말고, 두 사람을 실제로 묶어 주는 것이 무엇인지로 연결선에 이름을 붙이세요. 핏줄, 결혼, 입 밖에 내지 않은 빚, 목숨을 구해 준 일 같은 것으로요.
유언장에는 적히지 않는 유산
토니 모리슨의 『솔로몬의 노래』(Song of Solomon)는 구조로 보면 족보를 찾아가는 이야기예요. 밀크맨 데드는 소설 내내 집안의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요. 고모 파일럿을 거쳐, 어렴풋이 기억나는 동요를 거쳐, 솔로몬이라는 이름에 이르러요. 노예로 사느니 아프리카로 날아서 돌아갔다고 전해지는 증조부의 이름이었죠. 플롯은 말 그대로 밀크맨이 일부러 가려 둔 가계도를 채워 가는 과정이고, 마지막에 그가 물려받는 건 재산이 아니에요. 이름이고, 그 이름과 함께 찾은 자기 자신이에요.
이사벨 아옌데는 『영혼의 집』(The House of the Spirits)을 쓰는 동안 실제로 가계도를 그렸다고 직접 밝혔어요. 트루에바 집안의 여자들, 니베아, 클라라, 블랑카, 알바가 4대에 걸쳐 앞날을 내다보는 힘과 고집과 정치적 신념을 물려주는데, 독자가 그걸 설명으로 듣는 게 아니라 쌓여 가는 것으로 느껴야 했기 때문이에요. 이민진의 『파친코』(Pachinko)도 재일 조선인 가족 4대에 걸쳐 같은 일을 해요. 여기서 대물림되는 건 재능이 아니라 위태로운 처지이고, 세대마다 새로운 압력 속에서 그 처지를 다시 헤쳐 나가야 해요. 이 책들은 누구 손에 돈이 넘어가는지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관심을 두는 건 아무도 유언장에 적지 않는 유산, 기질과 침묵과 야망과 수치심이에요. 가계도는 그런 유산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그걸 드러낼 장면을 쓰기 전에 보여 주는 계획 도구예요.
소설 바깥에서 습관 하나를 빌려 올 만해요. 〈파인딩 유어 루츠〉(Finding Your Roots)를 진행하는 하버드대 역사학자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는 인터뷰에서, 출연자의 표정이 바뀌는 순간은 대개 사실 하나를 알게 될 때가 아니라고 했어요. 서너 세대에 걸친 무늬가, 본인이 한 번도 이름 붙이지 못했던 자기 안의 무언가를 갑자기 설명해 줄 때라는 거예요. 이 좁은 의미에서 소설가는 족보 연구가와 같은 일을 해요. 다른 점은 우리가 사실을 미리 정할 수 있다는 거죠. 독자의 표정이 어떤 무늬를 알아채게 할지 일부러 정하는 곳이 바로 가계도예요.
수수께끼를 망치지 않고 가계도 만들기
가계도를 꺼리는 작가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미리 다 그려 놓으면 수수께끼가 바닥나서, 쓰기도 전에 이야기가 다 풀려 버린 느낌일까 봐 걱정된다는 거예요. 그 마음은 이해해요. 하지만 맞는 말은 아니라고 봐요. 제 경험으로는 가계도는 독자가 책에서 겪는 경험이 아니에요. 작가 혼자 쓰는 비계일 뿐이고, 그린 순서대로 지면에 드러내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어요.
제가 실제로 쓰는 방법은 등장인물이 많아도 한자리에서 끝낼 수 있을 만큼 간단해요.
- 가계도의 기준을 인물 한 명과 한 시점, 대개는 이야기의 현재로 잡고 거기서 바깥으로 넓혀 가세요. 집안의 시조부터 시작해 아래로 내려오려고 하지 마세요.
- 인물마다 딱 네 가지만 적으세요. 기준 인물과의 관계, 이야기의 현재에 살아 있는지, 바라는 것 하나, 그리고 가계도 속 다른 누군가는 모르는데 이 사람만 아는 것 하나예요.
- 연결선은 맨 마지막에 긋고, 단순한 촌수가 아니라 하는 역할로 이름을 붙이세요. 그냥 "어머니"가 아니라 "장례식 이후로 말을 섞지 않는 어머니"처럼요. 압력은 바로 그 이름에 담겨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작가가 건너뛰는 이 세 번째 단계가 가장 중요해요. "여동생"이라고만 적힌 선은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아요. "법정에서 그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여동생"이라고 적힌 선은, 일부러 그쪽으로 써 나가든 제가 로사의 사망 연도에 걸려 넘어졌듯 우연히 부딪히든, 이 관계가 결국 어떤 장면을 불러올지 정확히 알려 줘요. 모든 선에 이런 이름이 붙으면 가계도는 기억을 돕는 메모를 넘어, 무대 지시문처럼 읽히는 개요가 돼요. 빈 종이보다 틀이 잡힌 페이지에서 시작하고 싶다면 Plotiar의 가계도 템플릿을 써 보세요. 제가 쓰는 것과 같은 기준점, 범위, 결 항목을 하나씩 안내해 줘요.
요즘은 가계도를 고정된 그림이 아니라 플로차트로 관리해요. 소설 속 관계도 고정돼 있지 않으니까요. 책 중간에 결혼이 끝나고, 마지막 챕터에서 오랜 냉전이 풀리고, 누군가 비밀을 알게 되면서 가계도의 선 하나가 뜻하는 바가 달라져요. 첫 주에 예쁘게 그려 놓고 다시는 손대지 않은 그림보다, 초고가 바뀌는 대로 고칠 수 있는 가계도가 훨씬 값져요.
이제 로사가 살아 있는 곳은 딱 한 군데예요. 3장, 손녀의 결혼식이요. 벽에 붙은 가계도에 따르면, 책이 실제로 시작되는 해 겨울에 찾아올 심장마비보다 12년 앞선 때예요. 그걸 아는 건 그 가계도가 아직도 책상 위 벽에 테이프로 붙어 있어서예요. 세 자매와 남편 둘, 1974년의 추문 하나가 파란 볼펜으로 그려져 있어요. 왕관도 왕국도 없고, 겉보기엔 그런 게 필요할 이유도 전혀 없는 책인데, 저는 그 가계도를 인정하기 민망할 만큼 자주 들여다봐요.
Plotiar의 가계도는 챕터와 같은 프로젝트 안에 있어요. 세대를 정리해 주는 가계도가, 그 가계도가 조용히 받쳐 주는 장면에서 클릭 한 번 거리에 있는 셈이죠. 무료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필요해지기 전에 가계도를 만들어 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