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팁

원형은 의상이 아니에요: 내 인물에게 남의 이야기 옷을 입히지 마세요

Plotiar 팀16분 소요

멘토 인물 하나를 넉 달 동안 쓴 적이 있는데, 결국 알고 보니 모자만 바꿔 쓴 간달프였어요.

세월에 깎인 얼굴, 딱 맞는 순간에 건네는 알쏭달쏭한 조언, 오래된 힘을 내비치는 비밀스러운 과거. 그는 주인공이 길을 잃었을 때 나타나 꼭 필요한 지혜를 나눠 주고는, 주인공이 다음 시련을 혼자 맞설 수 있게 때맞춰 사라졌어요. 2막 끝에서는 고결하게 자신을 희생하며 죽기까지 했어요. 저는 그 장면을 눈물을 글썽이며 썼어요. 남는 부품만 모아 조립한 인물의 죽음에 진심으로 마음이 흔들렸던 거예요.

원고를 읽은 친구 세라는 뼈아픈 말을 할 수 있는 가장 다정한 방식으로 해 줬어요. "이 사람 좋아." 솔직함과 우정 사이에서 고를 때 사람들이 그러듯 잠깐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어요. "그런데 어디서 만난 것 같아. 한 마흔 권쯤 되는 다른 책에서."

세라 말이 맞았어요. 그는 인물이 아니라 의상이었어요. 정확히는 "지혜로운 멘토"라는 의상을 마네킹에 입혀 플롯 지점마다 세워 둔 거였어요. 그는 오비완 케노비였고, 덤블도어였고, 술버릇만 뺀 헤이미치 애버내시였어요. 모두였고, 그래서 아무도 아니었어요. 제일 민망한 건 뭔지 아세요? 일부러 그랬다는 거예요. 말 그대로 "멘토 원형 특징"을 검색해서 나온 결과로 그를 만들었거든요.

이게 함정이에요. 소설을 구상하면서 "원형"이라는 말을 써 본 적이 있다면, 여러분도 이 함정에 빠졌을 가능성이 꽤 커요. 원형이 틀려서가 아니에요. 원형은 이야기에서 가장 강력한 개념 가운데 하나예요.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원형을 배우는 방식이, 원형을 잘못 쓰게 만들도록 거의 완벽하게 짜여 있다는 거예요.

취리히에서 내 책상까지 이어진 말 전하기 게임

원전을 다시 찾아 읽고 놀란 게 있어요. 오늘날 쓰는 의미의 "원형"이라는 말을 만든 칼 융은 인물 이야기를 한 게 전혀 아니었어요.

융은 20세기 초 취리히의 정신과 의사였는데, 이상한 점을 자꾸 발견했어요. 스위스 은행가, 독일 시골 출신 젊은 여성, 미국인 학자처럼 살아온 배경이 전혀 다른 환자들이 꿈에서 섬뜩할 만큼 비슷한 이미지를 봤던 거예요. 삼키려 드는 어머니, 지혜로운 노인, 어두운 분신, 남자와 여자의 경계가 흐릿한 존재. 배워서 얻은 이미지가 아니었어요. 환자들이 서로의 꿈 일기를 읽었을 리도 없고요. 더 깊은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었어요.

융은 이걸 집단 무의식으로 설명했어요. 개인의 경험 밑에 깔린, 모두가 함께 지닌 마음의 기반암이요. 그리고 그의 이론에서 원형은 그 기반암에 새겨진 패턴이었어요. 인물이 아니에요. 틀도 아니에요. 경험의 패턴이에요. 그림자는 악당이 아니라, 내가 외면해 온 내 일부와 마주하는 보편적인 경험이에요. 아니마는 연애 상대가 아니라, 남자가 자기 마음속 여성적인 면과 마주칠 때 일어나는 일이에요. 자기(Self)는 주인공이 아니라, 나머지 모두를 아우르는, 온전해지려는 마음의 충동이에요.

이제 말 전하기 게임이 시작돼요. 융이 이런 생각을 발표해요. 조지프 캠벨이 융을 읽고 그 틀로 세계의 신화를 분석해 1949년에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을 내요. 크리스토퍼 보글러가 캠벨을 읽고 1985년에 그걸 일곱 쪽짜리 할리우드 사내 메모로 압축해요. 글쓰기 블로그들이 보글러를 읽고 "작가라면 꼭 알아야 할 인물 원형 12가지" 같은 인포그래픽을 만들어요. 그리고 여러분은 "인물 원형"을 검색해서, 악당은 "그림자"이고 조력자는 "협력자"라고 알려 주는 목록 글을 만나요.

내 책상에 도착할 즈음이면, 사람의 경험을 빚는 깊은 심리적 패턴에 관한 풍부한 이론이 납작하게 눌려 배역 모집 공고가 돼 있어요. 네 번 단순해질 때마다 미묘한 결이 한 꺼풀씩 벗겨지고, 마지막엔 융이 봐도 못 알아볼 인물 틀 메뉴판만 남아요.

이게 중요한 건, 납작해진 버전이 그저 나쁜 조언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에요. 특정한 종류의 나쁜 인물을 만들어요. 속마음은 없고 구조상의 기능만 하는 인물이요. 그리고 이 패턴이 한번 눈에 들어오면 어디서나 보여요.

캠벨이 실제로 한 말 (그리고 할리우드가 알아들은 말)

캠벨은 따로 짚고 갈 만해요. 그의 책은 아마 현대 이야기 작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동시에 가장 많이 오해받는 책일 테니까요.

캠벨이 실제로 한 건 비교신화학이었어요. 그는 수십 개 문화의 신화를 읽고 되풀이되는 이야기의 모양을 발견했어요. 영웅이 일상의 세계를 떠나, 비범한 시련이 기다리는 세계로 들어가, 가장 큰 시련을 겪고, 달라진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는 모양이요. 그는 이걸 단일 신화라고 부르고 단계를 정리했어요. 모험에의 소명, 첫 관문의 통과, 시련의 길, 고래의 배 같은 단계들이요.

모두가 놓치는 게 있어요. 캠벨은 신화가 대체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설명했어요. 수천 년의 이야기를 돌아보며 "어, 여기 패턴이 있네"라고 말한 인류학자였지, 앞을 내다보며 "자, 이게 당신 개요예요"라고 말하는 시나리오 강사가 아니었어요. 기상학자가 태풍이 어떻게 생기는지 설명하는 것과 누가 태풍 만드는 레시피를 건네는 것만큼 다른 일이에요.

그런데 1985년, 보글러가 디즈니 사내 메모를 쓰자 단일 신화가 갑자기 레시피가 됐어요. 멘토는 정해진 임무(지혜를 전하고 죽기)를 가진 인물 유형이 됐어요. 관문 수호자도 인물 유형(관문 앞에서 영웅 시험하기)이 됐어요. 서로 겹치며 유연하게 흐르던 캠벨의 심리적 단계들은 퍼센트 표시가 붙은 딱딱한 플롯 비트가 됐어요. 그리고 할리우드는 이야기 만들기가 되풀이할 수 있는 제조 공정이기를 간절히 바라던 업계답게 열렬히 이걸 받아들였어요.

캠벨을 바탕으로 〈스타워즈〉의 뼈대를 짠 것으로 유명한 조지 루커스는 제대로 썼어요. 전통에서 재료를 끌어오는 예술가의 자유로움으로 그 틀을 빌렸거든요. 어떤 단계는 건너뛰고, 어떤 단계는 순서를 바꾸고, 캠벨이 말한 적 없는 것도 새로 지어냈어요. 하지만 루커스를 뒤따른 영화인들은 점점 보글러의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The Writer's Journey)를 이케아 조립 설명서처럼 다뤘어요. 순서대로 따라 하고 동봉된 부품만 쓰면 상자 그림 속 물건이 나온다는 식으로요. 그 결과, 신화의 비트를 하나도 빠짐없이 밟는데 어쩐지 남는 게 없는 영화들로 20년이 채워졌어요.

가장 큰 아이러니는, 거의 모든 작법서에서 영웅의 여정의 예로 드는 『반지의 제왕』의 J. R. R. 톨킨이 캠벨의 틀을 적극적으로 거부했다는 거예요. 톨킨은 중세 문학 연구자였어요. 북유럽 사가, 앵글로색슨 시, 핀란드 서사시에서 재료를 끌어왔고, 그의 원형은 캠벨이 종합한 이론이 아니라 원전에서 나왔어요. 그리고 프로도의 여정은 단일 신화를 전혀 깔끔하게 따르지 않아요. 관문에서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지도 않고, "여신과의 만남" 같은 순간도 없어요. 무엇보다 그의 마지막 행동은 실패예요. 반지를 파괴하지 않고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하죠. 세상을 구하는 건 우연히 골룸이에요. 이 이야기가 통하는 건 틀을 따라서가 아니라, 톨킨이 신화 밑에 깔린 심리를 너무나 깊이 이해해서 그의 인물들이 공식처럼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신화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캠벨 자신도 이걸 알았던 것 같아요. 유명한 PBS 대담에서 그는 빌 모이어스에게 "나는 처방하는 게 아니라 묘사하는 겁니다"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때는 이미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어요. 다들 비트 시트 칸 채우기에 바빴거든요.

원형 동물원 한 바퀴 (솔직한 해설과 함께)

원형은 틀이 아니라 패턴이라는 단서를 이렇게 잔뜩 달아 뒀으니, 이제 작가로서 가장 자주 만날 원형들을 실제로 둘러볼게요. 그냥 설명만 하지는 않을 거예요. 원형이 살아 있을 때는 어떤 모습이고, 박제돼 벽에 걸리면 어떤 모습인지 보여 드릴게요.

영웅은 변화의 여정을 걷는 인물이에요. 한 사람으로 시작해 다른 사람으로 끝나고, 그 두 모습 사이의 거리가 곧 이야기인 인물이요. 주인공이라고 다 이런 의미의 영웅은 아니에요. 제임스 본드, 애티커스 핀치, 셜록 홈스는 주인공이지만 변하지 않아요. 세상이 부딪쳐 부서지는 바위예요. 반대로 영웅은 부서지고 다시 빚어지는 쪽이에요.

오디세우스는 살펴볼 만한 영웅이에요. 그의 변화가 전혀 화려하지 않거든요. 그는 레벨업을 하지 않아요. 깎여 나가요. 10년 귀향길의 기착지마다, 부하들을 죽음으로 몬 오만과 잔꾀가 한 겹씩 벗겨져요. 거지로 변장한 채 홀로 이타카 해안에 떠밀려 올 즈음 그는 트로이로 떠난 정복자 왕이 아니에요. 더 작고, 더 슬프고, 더 지혜로운 누군가예요. 그리고 그렇게 작아진 모습만이 집을 되찾을 자격이 있어요. 평범하게 시작해 비범하게 끝나는 흔한 "선택받은 자"와 비교해 보세요. 오디세우스는 비범하게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요. 더 어렵고 더 흥미로운 아크이고, 점점 커지는 힘과 절정의 승리를 강조하는 "영웅 원형" 틀로는 결코 나오지 않을 아크예요.

캣니스 에버딘이 통하는 이유도 같아요. 캣니스의 영웅다움은 운명이나 특별함에서 나오지 않아요.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정치적 상징으로 비틀린 거예요. 캣니스가 게임에 자원하는 건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예요. 구체적이고, 개인적이고, 전혀 신화적이지 않은 행동이죠. 그리고 시리즈 내내 남들이 캣니스에게 영웅의 의미를 덧씌우는 동안 그저 살아남으려고 애써요. 한 번도 영웅이 되고 싶어 한 적 없는 영웅이고, 그 역할을 밀어내는 몸짓이 캣니스를 진짜처럼 느끼게 해요.

멘토는 변화의 여정에 길잡이가 필요해서 있어요. 신화 속 멘토는 대개 초자연적인 존재예요. 오디세우스를 이끄는 아테나, 단테를 데리고 지옥을 지나는 베르길리우스처럼요. 현대 소설에서 멘토는 "조언을 나눠 주고 예정대로 죽는 지혜로운 노인"으로 굳어 버렸어요. 원형이 가장 깊이 방부 처리된 모습이에요.

제가 정말 기억하는 멘토는 멘토 노릇을 못하는 사람들이에요. 헤이미치 애버내시는 죽음의 경기장으로 가는 열여섯 살 아이는커녕 자기 한 몸도 못 추스르는 술꾼이에요. 조언은 앞뒤가 안 맞고, 도움은 믿을 수가 없어요. 캣니스가 들어서려는 바로 그 체제에 너무 망가져서 그의 냉소는 잔인함처럼 보여요. 그게 그 상황에 대한 유일하게 정직한 반응이라는 걸 깨닫기 전까지는요. 그래서 마침내 그가 캣니스를 돕기로 마음먹을 때 그 결심이 무게를 가져요. 1막 내내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는 걸 보여 줬으니까요.

그리고 덤블도어가 있어요. 대중 소설에서 가장 매혹적인 멘토일지도 몰라요. 그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그가 동시에 한 아이가 제 발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야만 하는 수십 년짜리 계획을 꾸미는 조종자라는 점이에요. 반짝이는 눈빛, 어깨에 얹는 든든한 손, 할아버지 같은 따뜻한 순간들이 전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에서 거꾸로 복잡해져요. 덤블도어는 해리가 죽어야 한다는 걸 알았고, 해리가 그걸 받아들이도록 길러 왔다는 게 드러나니까요. 그는 결사 임무에 나설 병사를 훈련시키듯 해리를 이끌었어요. 진심 어린 애정과 더없이 냉혹한 목적을 함께 품고서요. 그건 멘토 원형이 아니에요. 멘토 원형을 변장처럼 걸친 한 사람이에요. 독자들이 몇 년씩 논쟁하는 인물이 바로 이런 인물이에요.

트릭스터는, 이건 끝까지 우길 생각인데, 이야기의 역사를 통틀어 한결같이 가장 흥미로운 원형이에요. 트릭스터는 경계를 넘나들고 규칙을 깨요. 이 범주와 저 범주 사이 틈에서 움직이고, 남들이 힘을 쓰는 곳에서 꾀를 쓰고, 진짜 누구 편인지는 자기만 알아요.

트릭스터가 사람을 끄는 건 도덕적으로 가둬 둘 수 없어서예요. 영웅에게는 규범이 있고, 그림자에게는 원한이 있어요. 트릭스터에게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꿍꿍이가 있어요. 『오셀로』(Othello)의 이아고는 트릭스터를 가장 어두운 끝까지 밀어붙인 인물이에요. 동기가 너무 얄팍해서 학자들이 400년 동안 그가 왜 그랬는지 알아내려고 애써 온 조종자예요. 콜리지는 그걸 "동기 없는 악의"라고 불렀어요. 멋진 표현이지만 정확하지는 않아요. 이아고에게는 동기가 있어요. 다만 턱없이 모자랄 뿐이에요. 제 꾀에 스스로 취한 머리가 하찮은 앙심을 세상을 무너뜨릴 계략으로 부풀린 거예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그 간극이 그를 무섭게 만들어요.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 초반 시즌의 티리온 라니스터는 살아남는 트릭스터예요. 농담 하나하나가 방패이고, 계략 하나하나가 허락받지 못한 완력을 메워요.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가장 똑똑한 사람이고, 이 원형의 비극은 힘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머리만으로는 결코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데 있어요. 트릭스터는 누구보다 영리해서 살아남고, 모든 트릭스터 이야기에 따라붙는 질문은 이거예요. 영리함만으로 모자라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될까?

그림자는 흔히 "악당"으로 통하는데, 바다를 "젖은 것"이라고 설명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림자는 영웅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인정할 수 없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 무엇이에요.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은 적대자지만 그림자는 아니에요. 그림자가 되려면 거울 관계가 있어야 해요. 영웅이 보기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비춰야 해요.

여기서부터 재미있어져요. 대중문화에서 가장 칭송받는 그림자는 다스 베이더인데, 저는 사실 그저 그런 예라고 봐요. 물론 그는 루크의 아버지이고 루크가 걸을 수도 있는 어둠의 길을 상징해요. 하지만 그 거울은 마음이 아니라 핏줄의 거울이에요. 루크는 한 번도 진지하게 베이더가 될 뻔하지 않아요. 유혹은 안이 아니라 밖에 있어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소설 속 톰 리플리와 비교해 보세요. 리플리는 주인공 그 자체예요. 매력적이고, 똑똑하고, 미적 감각이 예민하죠. 그리고 사람을 죽이고 그 신분을 훔쳐요. 하이스미스는 그를 시점 인물로 세운 다음, 그가 살아남든 말든 관심을 끊을 수 있으면 끊어 보라고 도발하며 독자가 살인자를 응원하게 만들어요. 리플리는 맞부딪칠 영웅이 없는 그림자예요. 거울 없는 어둠이고, 그가 비추는 건 계속 책장을 넘기는 독자, 바로 나예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의 안톤 시거도 있어요. 시거는 흔한 의미의 그림자가 아니에요. 영웅의 어두운 거울이 아니라 우주의 어두운 거울이니까요. 그는 르웰린 모스가 될 수도 있는 무언가를 상징하지 않아요. 사람의 계획과 희망과 도덕적 구분에 대한 운명의 철저한 무관심을 상징해요. 동전 던지기가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를 정해요. 선택도 용기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이게 가장 무서운 그림자예요. 악해지라고 유혹하는 그림자가 아니라, 선과 악이라는 구분이 애초에 아무 상관 없었다는 걸 드러내는 그림자요.

엘레나 바스케스의 원형이 3막에 걸쳐 바뀌는 과정을 추적하는 Plotiar 인물 원형 프로필 문서. 1막의 의상을 걸친 멘토에서 2막의 정체가 드러난 트릭스터를 거쳐 3막의 솔직한 멘토까지, 단계마다 달라지는 행동을 글머리 기호로 정리했어요

누구도 한 가지가 아니에요 (여기서부터가 진짜예요)

원형 안내서들이 건너뛰는 부분이 여기예요. 솔직히 사람들이 기억하는 인물을 쓰는 데 중요한 건 이 부분뿐이에요. 우리 모두의 상상 속에 영영 박혀 버린 인물들이 원형 하나의 깔끔한 예인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들은 충돌이고 모순이에요. 원형 두세 개가 한 몸에 욱여넣어져, 어떤 틀로도 예측할 수 없는 마찰을 일으키는 존재예요.

한 솔로는 〈스타워즈〉를 트릭스터로 시작해요. 밀수꾼이자 용병이고, 충성심이 딱 받은 돈만큼만 가는 남자예요. 그가 먼저 쏘는 건(네, 그는 언제나 먼저 쐈어요) 용감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이라서예요. 그러다 3부작을 거치며 영웅이 돼요. 그리고 트릭스터에서 영웅으로 넘어가는 그 변화가 그를 시리즈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로 만들어요. 영웅으로 시작해서 갈 길이 더 짧은 루크보다도요. 데스 스타 공격 장면에서 한이 밀레니엄 팔콘을 몰고 굉음과 함께 돌아와 루크의 길을 터 주는 순간이 짜릿한 건, 그 행동이 그의 원형을 거스르기 때문이에요. 트릭스터는 영웅적인 희생을 하지 않아요. 한은 해요. 원형의 전환이 곧 인물의 성장이에요. 그걸 빼면 한 솔로는 멋진 조끼를 입은 남자일 뿐이에요.

월터 화이트는 텔레비전 역사상 가장 오래 이어진 원형의 변화이고, 제 생각엔 견줄 상대도 없어요. 그는 영웅으로 시작해요. 시한부 판정을 받고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절박한 수단을 쓰는 평범한 남자예요. 안쓰럽고, 공감이 가고, 응원하게 돼요. 마지막 시즌에 이르면 그는 그림자 그 자체예요. 시즌 1에서 응원했던 모든 것의 어두운 반영이죠. 빈스 길리건은 이 드라마를 "미스터 칩스를 스카페이스로 바꾸는 이야기"라고 했는데, 그게 정확히 원형의 전환이에요. 멘토 같은 인물에서 괴물로요.

〈브레이킹 배드〉가 천재적인 건 그 전환이 일어난 순간을 끝내 짚을 수 없다는 점이에요. 월터 화이트가 영웅의 가면을 내려놓고 그림자의 가면을 집어 드는 장면 같은 건 없어요. 선을 하나씩, 조금씩 넘어갈 뿐이에요. 넘을 때마다 그 순간엔 그럴 만했고, 돌아보고 나서야 그게 문턱이었다는 게 보여요. 마약 제조가 언제부터 가족이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가 됐을까요? 그는 언제 절박한 아버지이기를 그만두고 하이젠베르크가 됐을까요? 월터 자신도 몰라요. 원형의 전환을 틀에 맞춰 설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펼쳐지게 두면 바로 이런 모호함이 생겨요.

원형이 인물을 납작하게 만든다는 말을 들으면 저는 서세이 라니스터를 꺼내요. 서세이는 그림자예요. 시리즈에서 마음이 가는 거의 모든 인물의 적이죠. 동시에 어머니예요. 자식들에게 맹렬하고 파괴적으로 헌신하고, 그 헌신이 최악의 결정 대부분을 움직여요. 그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보면, 서세이는 자기 이야기의 영웅이기도 해요. 정당한 권력이라곤 하나도 허락하지 않는 남성 중심의 세상을 헤쳐 가면서, 남은 유일한 도구인 미모와 술수, 그리고 모든 걸 불태울 각오를 휘두르는 여자요. 맞아요, 서세이는 괴물이에요. 하지만 조지 R. R. 마틴은 서세이에게 충분한 속마음을 줘서, 바로 이 괴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이해하게 해요. 원형들이 부딪쳐, 한숨에 경멸하면서도 연민하게 되는 누군가가 탄생해요. 틀이 주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원형을 깨뜨릴 수 있을 만큼 깊이 이해한 작가에게서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문제를 극소수 작가만 닿아 본 깊이로 이해한 어슐러 K. 르 귄이 있어요. 『어스시의 마법사』(A Wizard of Earthsea)에서 젊은 마법사 게드는 무모하게 힘을 과시하다가 그림자 같은 존재, 형체 없는 어둠을 세상에 풀어놓고 말아요. 그 존재는 군도를 가로질러 그를 쫓고, 소설은 내내 절정의 결투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절정은 결투가 아니라 통합이에요. 게드는 돌아서서 그림자를 향해 달려가 하나가 돼요. "게드는 지지도 이기지도 않았다. 자기 죽음의 그림자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온전해졌다." 르 귄은 그림자 원형을 그냥 쓴 게 아니에요. 융이 실제로 뜻한 그대로 썼어요. 무찔러야 할 악당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자기의 일부로요. 영웅이 그림자가 되고, 그게 승리예요. 이걸 비트 시트에 끼워 넣어 보세요.

여러 인물의 원형 충돌을 그린 Plotiar 플로차트. 멘토와 트릭스터가 섞인 엘레나가 '이끈다 / 속인다' 관계로 영웅에서 그림자로 가는 아나와 이어지고, 그림자이자 트릭스터인 마커스의 노드에는 '연기를 폭로한다', 변신자 역할인 다라에는 '충성이 의심받는다'가 적혀 있어요

트릭스터 문제 (같은 원형이 곳곳에서 달라 보이는 이유)

흔히 드는 서구 고전 사례 바깥으로 읽기 시작했을 때 깜짝 놀란 게 있어요. 같은 원형이 문화에 따라 너무 달라 보여서 같은 패턴이라고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는 거예요.

트릭스터를 예로 들어 볼게요. 북유럽 신화의 로키는 혼돈의 화신이에요. 신들을 돕다가도 신들의 파멸을 꾸미는 변신자이고, 그 모호함은 결국 종말 쪽으로 기울어요. 어둡고, 위험하고, 도덕이라곤 없어요.

이제 바다와 대륙을 하나씩 건너가 보세요. 서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전통의 거미 아난시도 트릭스터예요. 하지만 아난시는 혼란스럽지 않아요. 계산적이에요. 거미답게 작고 힘도 약한 그는 이야기와 꾀로 권력의 위계를 뒤집어요. 신과 왕을 속여 넘기는데, 그 속임수는 아무렇게나 판을 흔드는 게 아니라 나눠 주는 일이에요. 권력을 쌓아 둔 자들에게서 빼앗아 권력을 빼앗긴 자들에게 줘요. 아난시는 로키가 아니에요. 꾀가 무엇을 위해 있는지에 대한 전혀 다른 문화적 이해를 거쳐 나온 로빈 후드예요.

그리고 중국 고전 『서유기』의 손오공이 있어요. 하늘의 관료 조직 전체에 싸움을 걸 만큼 불경한 트릭스터로 시작해, 오행산 아래 오백 년 동안 갇혔다가, 제멋대로인 반항을 단련된 목적으로 바꿔 가는 긴 여정 끝에 구원받아요. 그의 트릭스터 기질은 사라지지 않아요. 제 갈 길을 찾아요. 트릭스터가 철이 들면 어떻게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고, 트릭스터를 죽이거나 영원한 사춘기에 묶어 두곤 하는 서구 신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야기예요.

이게 내 글에 왜 중요할까요? 내 트릭스터가 늘 로키처럼 혼란스럽고 도덕 없고 위험하기만 하다면, 스펙트럼 전체를 쓸 수 있는데도 한 가지 색으로만 칠하고 있는 거예요. 트릭스터는 계산적일 수 있어요(아난시). 철이 들 수도 있어요(손오공). 한 몸짓 안에서 만들어 내는 동시에 부술 수도 있어요(여러 아메리카 원주민 전통의 코요테는 꾀와 엄청난 실수를 뒤섞어 말 그대로 세상을 빚어요). 원형은 깊은 패턴이고, 그게 지면에서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는 문화적 표현이 정해요. 더 많은 표현을 알수록 선택지도 늘어나요.

내 인물이 의상을 입고 있는지 알아보는 법

몇 년 동안 진단법을 몇 가지 만들어 왔어요. 내 원고에 해 보면 불편한데, 그게 제대로 작동한다는 증거예요.

이식 테스트. 조연 하나를 골라 머릿속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에 옮겨 놓아 보세요. 거기서도 똑같이 잘 돌아간다면, 그러니까 내 지혜로운 늙은 마법사가 대사 한 줄 안 바꾸고 형사에게도, 우주선 선장에게도, 고등학생에게도 조언할 수 있다면, 내가 쓴 건 인물이 아니라 기능이에요. 멘토 원형을 맡은 진짜 사람은 자기 세계, 자기 상처,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방식에 너무 단단히 묶여 있어서, 다른 데로 옮기려면 완전히 다시 써야 해요. 헤이미치 애버내시는 캣니스 말고는 누구의 멘토도 될 수 없어요. 그의 멘토 노릇은 자기 파괴, 게임에서의 과거, 그만의 빈정거리는 다정함과 떼어 놓을 수 없으니까요. 그게 구체성이고, 그게 인물이에요.

묘사 테스트. 이름, 외모, 원형 딱지를 빼고 인물을 묘사해 보세요. "주인공을 이끌다가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 같은 뻔한 말만 나온다면, 인물 묘사가 해야 할 일을 원형이 대신하고 있는 거예요. 이번엔 잘 그려진 인물로 해 보세요. 헤이미치라면 이래요. "24년 전 자기 시대의 죽음의 게임에서 우승한 술꾼. 자신을 유명 인사로 만든 체제를 증오하고, 애정은 주로 빈정거림과 자기 파괴적인 반항으로 드러낸다." 이건 사람이에요. 목소리가 들리고, 술집에서 뭘 시킬지도 알 것 같아요.

NPC 테스트. 비디오 게임의 NPC, 그러니까 플레이어가 조종하지 않는 캐릭터는 플레이어를 위해 존재해요. 상점 주인은 칼을 팔고, 퀘스트를 주는 인물은 심부름을 시키고, 여관 주인은 설명을 쏟아 내요. 속마음 같은 건 없어요. 자기 자리에 서서 기다릴 뿐이에요. 내 조연들이 똑같이 움직인다면, 그러니까 멘토는 이끌려고, 전령은 소명을 전하려고, 관문 수호자는 문을 막으려고 있다면, 나는 NPC 출연진을 쓴 거예요. 해법은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워요. 비중 있는 인물 모두에게 주인공과 아무 상관 없이 바라는 것을 주세요. 무너져 가는 결혼 생활을 떠안고 있는 멘토, 늘 나쁜 소식만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게 싫은 전령처럼요. 인물에게 이야기상의 기능과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바람이 생기는 순간, 그 인물은 숨을 쉬기 시작해요.

예측 테스트. 원형 이론을 아는 친구에게 개요를 건네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맞혀 보라고 하세요. 친구가 "멘토는 2막에서 죽지?" 하는 식으로 비트를 다 맞힌다면, 원형이 이야기에 영감을 주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조종하고 있는 거예요. 원형은 언어의 문법처럼 작동해야 해요. 무슨 말을 할지 정해 주는 대본이 아니라, 끝없는 변주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 구조로요.

원형을 제대로 쓰는 법 (원형에 휘둘리지 않고)

이렇게 허물기만 했으니 이제 뭔가를 지어 볼게요. 요즘 제가 실제로 원형을 다루는 방식이에요. 원형을 번호대로 칠하는 색칠 공부가 아니라, 무언가를 낳는 도구로 다루는 틀이에요.

패턴이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하세요. 인물의 과거, 모순, 커피를 주문하는 방식,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 같은 구체적인 디테일로 인물을 만드세요. 지면에서 숨 쉬게 하세요. 그다음에 한발 물러서서 물어보세요. 이 인물은 자연스럽게 어떤 원형 쪽으로 기울고 있을까? 잘 만든 인물은 원형을 배정받지 않아도 거의 언제나 원형 한두 개와 겹친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게 올바른 흐름이에요. 인물이 먼저이고, 원형은 렌즈예요. 그 반대로, 메뉴판에서 "멘토"를 고르고 그 둘레에 인물을 짓다 보면 간달프 복제품이 나와요.

두 번째 원형을 찾으세요. 주된 패턴을 알았다면 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세요. 이 인물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원형은 뭘까? 트릭스터이기도 한 멘토(덤블도어, 이끄는 동시에 속이는 인물). 그림자이기도 한 영웅(월터 화이트, 맞서야 할 바로 그것이 되어 가는 인물). 알고 보면 영웅이 되어 가는 트릭스터(한 솔로, 옳은 일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냉소주의자). 두 원형이 부딪치면 저절로 입체감이 생겨요. 진짜 같은 인물을 만드는 가장 간단한 비법이에요. 함께 있으면 안 될 두 패턴을 골라 함께 있게 하세요.

전환을 따라가세요. 인물이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같은 원형에 머물러서는 안 돼요. 내 인물은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나나요? 트릭스터로 시작해 영웅으로 끝난다면, 이야기 중반부는 그 변화를 극으로 보여 줘야 해요. 잔꾀가 신념에 자리를 내주는 구체적인 장면들로요. 영웅으로 시작해 그림자로 끝난다면, 챕터마다 너무 늦기 전에는 독자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타락을 밀고 나가야 해요. 원형의 전환에 이름을 붙이거나 선언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느껴져야 해요.

원형이 깨지는 장면을 쓰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습이고, 제가 쓴 가장 좋은 장면 몇 개가 여기서 나왔어요. 인물의 주된 원형을 고르고 그 핵심 자질을 찾으세요. 멘토는 지혜, 영웅은 용기, 트릭스터는 꾀예요. 이제 인물이 그 자질과 반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장면을 쓰세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털어놓아야 하는 멘토. 도망쳐야 하는 영웅. 모든 가면을 벗고 아플 만큼, 불편할 만큼 진심이어야 하는 트릭스터. 이런 장면은 인물이 자기 원형을 착실히 연기하는 장면 백 개보다 그 인물을 더 잘 보여 줘요. 패턴이 무너질 때 그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나니까요.

딱지가 아니라 관계로 생각하세요. 원형의 진짜 힘은 인물 하나하나를 분류하는 데 있지 않아요. 원형적 인물들 사이의 역학에 있어요. 영웅과 그림자가 한 방에 있으면 갈등이 생겨요. 영웅과 멘토는 성장을, 영웅과 트릭스터는 예측 불가능함을 낳아요. 여러 인물을 함께 설계할 때는 짝으로 생각하세요. 영웅 없이 그림자와 트릭스터만 한 장면에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대개 무시무시하면서도 매혹적인 일이 생겨요.) 멘토이자 변신자인 인물, 같은 대화 안에서 가르치면서 속이는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요? 가장 흥미로운 기운은 원형과 원형이 만나는 자리에 있고, 인물 하나하나의 프로필을 아무리 파도 그건 찾을 수 없어요. 인물들을 한 방에 넣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봐야 해요.

다시, 나의 간달프

결국 그를 고쳤어요. 그 멘토, 모자만 바꿔 쓴 간달프 말이에요.

시작은 "이 장면에서 멘토는 뭘 해야 하지?"라고 묻기를 그만두고, 솔직히 불편한 질문을 던지면서부터였어요. "아무도 이 사람에게 지혜로워 달라고 하지 않을 때, 이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천천히 오다가 한꺼번에 몰려왔어요. 그는 거짓말쟁이였어요. 수십 년짜리 계략과 비극적인 명분을 지닌, 덤블도어 같은 거창한 거짓말쟁이가 아니었어요. 작고 습관적인 거짓말쟁이였어요. 너무 오래 지혜를 연기한 나머지, 자기가 정말 믿는 것과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의 차이를 더는 모르게 된 남자요. 그가 조언을 한 건 답을 알아서가 아니라 침묵이 무서워서였어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데 중독돼 있었어요. 부르지도 않았는데 남의 위기에 나타났어요. 도우려는 게 아니라, 자기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느끼려고요.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이 그를 넘어서 더는 조언을 구하지 않게 됐을 때, 그에게 닥친 위기는 고결한 희생이 아니었어요. 쓸모없어지는 것이었어요. 더는 이끌 사람이 없는 멘토가, 평생 남의 여정으로 메워 온 공허와 함께 홀로 앉아 있는 것이요.

구조로 보면 그는 여전히 멘토였어요. 여전히 주인공을 결정적인 전환으로 이끌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트릭스터이기도 했어요. 역할을 사는 게 아니라 연기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자신의 그림자는, 연기를 빼면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두려움이었어요. 한 인물 안에서 원형 셋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잡아당기며 마찰을 일으켰고, 그 마찰 덕분에 저는 그를 플롯 지점마다 세워 두는 대신 계속 써 나가고 싶어졌어요.

세라가 새 원고를 읽고 말했어요. "이제야 이 사람이 진짜 누군가가 됐네."

원형은 그러라고 있는 거예요. 인물이 누구인지 정해 주려는 게 아니라, 인물이 이미 드러내고 있는 깊은 패턴을 알아보게 돕고, 그다음 그 패턴을 복잡하게 꼬고 비틀고, 어울리지 않는 패턴들을 겹겹이 쌓아서, 어떤 틀로도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 되게 하려고요. 원형은 이야기의 문법이 아니라 어휘예요. 단어를 안다고 문장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문장은 조합에서, 놀라움에서, 그리고 인물이 처음 출발한 패턴 너머로 손을 뻗어 마침내 더는 쪼갤 수 없는, 고집스러운 자기 자신이 되는 순간에서 나와요.

인물의 원형적 층위, 그러니까 주된 패턴과 숨은 긴장, 그리고 그 패턴이 원고 전체에서 어떻게 바뀌는지를 따라가려면 모든 걸 한곳에 두는 게 훨씬 편해요. Plotiar에서는 인물 프로필, 원형 노트, 관계도, 챕터 초고를 한 프로젝트에 모아 둘 수 있어서, 그 밑에 있는 사람을 잃지 않고 패턴을 따라갈 수 있어요. 무료로 시작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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